[취재수첩] 농민도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이다
입력 : 2019-11-29 00:00
수정 : 2019-11-28 14:04


우리나라의 첫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으로 익숙한 남미 국가 칠레가 연일 국제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10월18일부터 시작된 칠레 국민의 격렬한 대규모 시위는 한달 이상 이어지고 있다. 칠레 혼돈의 도화선은 정부의 지하철 요금 ‘50원’ 인상 발표였다. 게다가 요금인상을 주도했던 후안 안드레스 폰테인 경제산업관광부 장관이 시민들의 불만에 대해 “새벽에 일어나 조조할인을 이용하라”고 했다가 여론의 몰매를 맞고 경질됐다.

외신들은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과 고착화된 극심한 빈부격차, 사회적 불평등이 민심을 성나게 한 근본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칠레 사태를 주의 깊게 보는 것은 현재 우리 농업의 모습과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는 ‘앞으로 진행하는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에서 농업분야 개발도상국 지위를 더이상 주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농업예산(직불금 등) 증액 같은 몇가지 당근책과 함께다.

정부 결정과 대책을 바라보는 농민들의 시선은 그 어느 때보다 싸늘하다. 좌절감과 함께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도 가득하다. 그래서 현장에서 느끼는 농민단체들의 반발 또한 강하다. 농협의 한 조합장은 조합원 200여명으로부터 서명을 받아 ‘개도국 지위포기 반대청원서’를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농업소득의 사실상 정체와 급속한 고령화로점점 쪼그라드는 우리 농촌현실을 바라보는 농심에서 성난 칠레 민중들이 느끼는 박탈감·분노·불신을 느낀다.

최근 한 조합장이 기자에게 보낸 장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시지를 보면 더욱 그렇다. 메시지의 일부를 그대로 인용해본다.

“정부는 일방적인 개발도상국 지위포기 발표를 하면서 농업피해가 없다고 한다. 걱정하지 말란다. 완전 일방통보다. 과거 우루과이라운드(UR) 농업협상이 그랬고, 각국과 맺은 FTA 때도 그랬다. 그런데 어떤가. 수년이 지난 지금 물밀듯이 밀려 들어오는 수입 농산물로 우리 농업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져만 가고 있다. 왜 농업인만 당하고 살라고 강요하는가. 수출로 돈 버는 기업 따로 있고, 농산물 수입으로 손해 보는 국민 따로 있는가. 형평에 맞질 않는다.”

농업계의 이같은 인식은 그동안 농업의 희생만을 강요한 정부 정책의 결과다. 실제로 농민들은 수십년 동안 통상정책에서 철저하게 소외됐고, 농축산물 수입개방 피해를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고 있다.

지금 농민은 정부가 농업·농촌·농민을 따뜻하게 보듬는 그런 손길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농민도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국민에게 농민의 간절한 소망을 전한 메시지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국가와 국민은 농업인이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농업기본소득제·공익형 직불제·무역이득공유제를 도입해 농업인들의 막혀버린 숨통을 열어줘야 한다. 농업인도 국민이다.”

유건연 (농민신문 전국사회부 차장) sower@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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